2 people found this review helpful
Recommended
1.1 hrs last two weeks / 277.2 hrs on record (267.5 hrs at review time)
Posted: 21 Apr, 2021 @ 11:49am
Updated: 21 Apr, 2021 @ 11:22pm

대다수의 게임은 역활 놀이를 기본 전제로 깔고 들어갑니다. 개발자가 특정한 규칙(시스템)과 그 규칙에 기반해 닿아야만 할 목표(골)을 설정한 세상 안에서 , 플레이어는 현실의 자신과 다르거나 ,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아바타를 조종해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아바타의 형태는 개발사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데 ,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아가 있거나 , 자아가 없거나. 전자의 경우 , 플레이어에게 개발자가 풀고자 하는 스토리를 보다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어 스토리라인이 명확하게 짜여있는 작품에 자주 사용되고 , 후자 같은 경우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자신을 오롯이 대입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어 월드 체험에 중점을 두는 작품에 많이 사용됩니다. 직선형 스토리 구성을 취하고 있는 메인 스트림에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월드 그 자체를 체험하는 것에 중점을 두느냐 정도의 쓰임새 차이라고 있겠죠. 게임을 만드는데 명백한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 못 만드는 것 외에 불법을 운운할 수도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점 몇개가 생기죠. 게임은 대체 왜 역활 놀이를 중점으로 둘까요? 현실의 플레이어를 그대로 게임 세상에 대입해 게임을 할 수는 없는걸까요? 하나같이 왜 자신과 다른 아바타를 만들어 게임 속 세상에 던져놓고 게임을 즐기게 하는 걸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줄로 축약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은 현실이 아니니까요.'

아무리 현실성이 짙은 게임이 나온다 하더라도 , 크래프팅 시스템과 생존 시스템이 발달해 플레이어에게 생존의 고통을 몸소 안겨주는 게임이 나온다 하더라도 , 현실에는 게임이란 매체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감각이라는 변수가 섞여 있습니다. 게임 속 캐릭터가 배를 곯아 죽어간다 해도 ,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 그 원인에 대한 결과는 죽음 이상의 불편함을 주지 못합니다. 옷이 젖어 축축함 상태에 빠진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는 그 상태를 창으로만 볼 뿐 , 그 불쾌감을 몸으로 직접 느끼지는 못합니다. 정리하자면 , 현실의 감각을 게임 안에 조금이라도 옮겨 올 수 있을만한 충분한 기술이 아직까진 등장하지 않았고 ,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게임은 완벽한 체험이 아닌 , 오락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현실이 아니라 오락 속 세상이기에 거기서 설정한 룰에 따른 결과를 가시적으로 전달해줄 아바타의 존재가 필수적이게 되는거고요.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가상 현실 기기가 현실에 떡하니 자리한지 오래임에도 아직까지 주류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같은 VR 기기들이 다른 게임들과 다른 체험을 플레이어에게 아무리 많이 전달해준다 하더라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감각의 구현이 없는 이상 현대의 가상현실은 이전에 느끼던 미/시/청각을 조금 더 확장시킨 , 시스템 증강 정도의 역활 정도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현실적인 게임이니 시뮬레이션이니 말을 해대도 , 게임 좀 해봤다 싶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비슷비슷한 시스템의 반복일 뿐이라는 말이죠. 이 틀을 깬다면 게임은 충분히 미래 지향적인 매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보긴 하지만 그건 제가 늙어 죽기 전에 구현 가능할련지 모르겠으니 패스하겠습니다.

말이 좀 샜는데 , 요는 게임은 아무리 현실적이어도 오락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현실에만 존재하는 감각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변수 , 삶의 다양성은 게임이 아무리 발전해도 따라잡기 힘들고 , 따라잡을 수도 없을 현실의 특성입니다. 여기서 게임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하나 더 생겨나는데 , 그건 바로 목표(골)의 존재 유무입니다.


/

일단 글을 적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왜 사시나요? 누군가는 삶의 목적이 없다고 하겠고 ,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목적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몸담고 죽기 전까지 70~90년 남짓한 시간을 살아 갈 동안 벌어지는 모든 생의 목적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해 있는가를 확실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겁니다. 게임 용어로 말해보자면 삶이란 큰 그림의 목적 , 즉 명백한 골이 없다는겁니다. 생을 살아가는 여러 둔턱에서 닿고 싶은 작고 큰 목적지를 결정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게 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게임과 삶의 차이점이 생겨납니다.

게임은 , 최소한 대다수의 게임은 , 시작과 끝이 명확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스토리를 끌어가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작은 일들과 그 일들이 플레이어를 끌고 갈 최종적인 종착지가 명백하게 정해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가게 됩니다. 그런데 삶은 그게 아니죠. 작고 큰 목표 정도는 본인이 설정할 수 있겠지만 , 이 일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실에만 있는 감각이 만들어내는 개인적인 변수와 똑같은 감각을 갖고 있는 타인간의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 , 그럼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잠을 자고 게임만 하다가 이따금씩 밥을 차려먹는다. 게임으로 치자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주제입니다. 플레이 방식이 단조로워 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게임으로 구현해보면 버튼액션 조금에 캐릭터 조작 조금이 들어간 망겜이 되겠죠. 하지만 현실이라면 그 얘기가 다릅니다. 잠을 잘때 충족되는 수면욕과 음식을 먹을때 느껴지는 감각 , 그리고 일일히 열거할 수 없을 많은 변수들이 삶을 단순한 시스템 안에 갇혀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게임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게임과 현실간의 차이는 , 게임은 명백한 목표와 그로 향하는 '여정'이 없으면 작품의 가치 자체가 사라지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겁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게임들은 작은 목표와 큰 목표를 함께 설정합니다. 최종적으로 향할 종착지가 있어야 플레이어가 게임을 지속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데에는 명백한 이유랄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지만 게임은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존재 가치 자체가 사라진다는 인식이 대다수였습니다. 데이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


아르마의 모드로 첫 출발점을 알린 데이즈는 이런 시장의 트렌드에 보기 좋게 중지를 치켜든 게임이었습니다. 이 모드의 개발자였던 로켓 딘 홀은 명백한 목표점이 있던 기존 게임들과는 달리 , 현실의 감각을 수치화시키고 그에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파밍 요소들과 , 그에 들어맞는 여러 메카니즘을 도입해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정교한 시스템을 구현해냈습니다. 데이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는데 , 로켓 딘 홀은 게임 자체가 주는 목표보단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현실을 가장 비슷하게 구현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 반대로 말하자면 이 작품을 즐기는 플레이어가 없거나 , 그들이 이걸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할지를 모른다면 이 모드의 존재 가치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다행스럽게도 , 데이즈를 즐기는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그 이전까지 계속 발전해온 슈터 장르와 플레이어간의 경쟁에 익숙해져 게임을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하는지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고 , 범용성 하난 꾸준하게 높았던 서바이벌 장르는 게임 시장의 아주 큰 축이 되었습니다.

이런 서바이벌 장르의 특징을 열거하자면 현실성을 위한 아주 극단적인 제약과 , 서로 얽혀 작동하는 수많은 메커니즘을 그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일단 , 주울 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대충 몇개만 분류하더라도 음식 , 탄약 , 약재 , 총기 , 옷 , 등등. 여기서 파생되고 쓰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여러 아이템들이 있고 이것들이 각기 다른 메커니즘에 대응해 작동합니다. 대체로 파밍 요소가 있는 게임들은 뭔가를 줍는 일의 목적이 제작에 이어지는 성장이란 레벨업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 서바이벌 장르는 제작은 있어도 레벨업보다는 플레이어에게 붙은 여러 상태이상 , 즉 제약거리들을 해제하는 쪽에 이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큰 목표보단 작은 목표들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덤으로 , 서바이벌 장르는 현실성과 메카니즘들의 활용을 위해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아주 낮게 설정합니다. 적에게 몇 대만 맞아도 출혈이 걸리고 , 조금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골절이 걸려 개발자가 준비한 여러 메카니즘들이 모두 플레이어에게 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습니다. 결국 이런 설정들이 모이고 모여 플레이어에게 생존을 하는 것 자체를 게임의 소주제로 느낄 수 있게 하고 , 모든 메카니즘이 실용성을 띄게 만들어 게임의 현실성을 극단적으로 높여줍니다. 플레이어가 서바이벌 장르가 아닌 다른 게임을 할때 이게 게임이다 하는 느낌을 가장 크게 받는 부분이 바로 막힌 맵과 특정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단순한 메카니즘인데 , 서바이벌 장르는 그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 여전히 감각은 빠졌어도 - 그나마 현실에 가까운 플레이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럼 게임이 현실성이 높아지면 좋은 점이 있을까요? 단점도 분명 있겠지만 , 장점이 더 많습니다. 가장 큰 장점만 말해보자면 게임을 플레이할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긴장감 , 즉 서스펜스가 극도로 높아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 아바타와 플레이어는 큰 접점이 없기 때문에 게임을 할때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와 자신간의 어느 정도의 벽을 느끼며 게임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바이벌 장르는 위에서 열거한 이유들이 복잡하게 엮여 작용하다 보니 그런 면이 크게 덜어집니다. 오락보단 더 현실같은 느낌을 받아 플레이어와 아바타간의 간극이 많이 좁혀진다는 말입니다. 한번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원 코인 시스템 역시 이런 점에 크게 기여합니다. 코인을 넣는 오락기가 사라진 시대 이후 대다수의 게임들에서 죽음이란 새로운 시작 내지는 세이브포인트로 복귀 정도의 가치를 갖는데 서바이벌 장르의 경우엔 진짜 끝이거든요. 이런 점 덕분에 타 플레이어를 죽인다는 일의 가치 역시 올라가서 게임 내내 크게 긴장하며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


배틀그라운드는 위에서 설명한 서바이벌 장르의 특성을 어느 정도 흡수해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브랜든 그린이 이 작품을 참고했다고 딱히 말한 적은 없는걸로 알지만 장르적 유사성은 확실히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일단 , 데이즈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수많은 파밍 요소들과 그에 딱 들어맞는 메카니즘이 존재합니다. 보이는 건물의 대다수를 들어갈 수 있고 , 파밍 요소들이 널려 있다는 점 역시 동일하며 , 원 코인 게임이라는 점 역시도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약으로 인한 불편함을 줬던 생존 요소를 싹 빼고 오롯이 전투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또 다른 차이점을 들자면 , 목표가 명확합니다. 자기장을 피하고 , 최후의 1인이 되어 살아남아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는 명백한 종착지가 있죠.

달리 말하자면 배틀그라운드는 , 서바이벌 장르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차용했으나 그걸 조금 라이트하게 다듬어 현실적인 것보단 오락에 가까운 형태로 변형을 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서바이벌 장르의 요소를 많이 가져온 덕분에 현실성이 높고 , 리스폰이 없으니 매 전투가 지닌 가치가 크다는 점에서 게임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자기장의 존재 역시도 서바이벌 요소 없이는 과하게 넓게 느껴지는 맵의 남는 부분들을 긴장감 있게 제거해줍니다. 정리하자면 , 선택과 집중이 아주 잘 된 작품이라는 말입니다. 작품의 근본이었던 데이즈만이 가졌던 가치는 아주 많이 사라져버렸지만 더 오락에 가깝게 다듬어졌습니다. 라이트하고 , 대중적이기에 크게 흥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라는 말을 예전에 했으면 예언이 됬겠지만 게임이 이미 너무 커버린 이 시점에선 그냥 뒷북 치는 짓이겠죠. 그래도 흥할만한 싹수는 처음부터 있었던 게임이란 말은 하고 싶습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데이즈의 틀을 성공적으로 변형시킨 작품이거든요. 게임을 하면 할수록 브랜든 그린이 고심을 많이 해서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게임이 좀 큰 요즘은 핵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긴 한데 그건 게임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니까요.

물론 저는 에임이 고자가 된 관계로 이제 안 하고 있긴 합니다.
너무 어려워요 게임. 저녁으로 치킨을 먹은 기억을 손에 꼽는다구요 흨흨
Was this review helpful? Yes No Funny Award
Comments are disabled for this review.